[단편] if... -1- └단편소설



원래 5,6 페이지 정도로 짧게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현재 쓴 것만 15페이지, 플롯상 50페이지가 되버린 이야기.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 화를 다 쓴 후에 전 화를 올리는 치밀함!!
그러니까 댓글 주세여. 헤헤.













그 날은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업체의 실수로 내일 쓸 커피콩이 오지 않아, 폐점 후 지인의 가게에서 내일 쓸 분량을 얻어 오는 길이었다. 비는 싫다.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은 좋지 않은 일만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그녀와 헤어진 것도 이렇게 구슬프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집 겸 카페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내 시야에 비친 것은 흙탕물로 얼룩진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길 바닥에 쓰러진 소녀였다.



 

if...



 

여자가 싫었다.

친모부터 계모까지, 내가 자라온 과정이 여자를 좋아할 수가 없던 환경이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원했다. 받은 것이 없는 만큼 주고 싶었고,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라 부르던 사람은 새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간의 돈을 던져주고 인연을 끊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새어머니도.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랄 수만은 없었고 나는 내 마음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중엔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있었다. 취향부터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종국엔 서로가 서로를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어린 시절엔 상대를 탓했다. 나는 죄가 없다며. 그것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인지를 깨달은 지금에 와선 그저 지나간 시간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지쳐버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 알아가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즐기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이, 그 끝에 찾아오는 차가운 감각에 지쳐버렸다.

 

카페와 집을 겸하는 작은 건물.

이곳만을 안식처 삼아 비록 장사는 잘 되지 않는 카페였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대신 평생 먹고 사는 덴 지장 없을 만큼의 돈을 받았다.

사실은 이런 것 보단가난해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띠링.

문자가 왔다.

사람들과의 교류 자체를 피하고 있는 내게 연락이 올 곳은 업체 사람들이나, 광고 문자, 혹은.

-귀엽지? 귀엽지? 오늘이야 말로 인정하고 찬양해라. (사진 첨부)

얼마 전에 알게 된 이후로 나를 못살게 구는 동갑내기 남자 놈 정도였다.

알게 된 지는 얼마 안되지만, 첫 만남 때부터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것만큼 편안한 녀석이었다. 마치 내 속을 아는 듯 조용히 미소 지으며 얘길 하는 모습에 사람과의 거리를 칼 같이 지키던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던 내 사적인 모습과 과거를 얘기하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힘들었겠다. 정도, 혹은 힘내. 정도의 무책임한 말을 떠넘기며 듣기 싫다는 티를 냈어야 정상이겠지만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토닥인 뒤 조용히 술잔을 들이켰다. 그것만으로도 마치 이해 받은 기분이 들어 번호를 알려주고 유일하게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후회하게 된 것은 바로 다음 날 부터였다.

매일 같이 질리지도 않고 사진을 첨부해서 메시지 테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자 메시지에 첨부 된 사진은 이 녀석의 여동생.

이번엔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 어머니 쪽의 유전인지 색소가 옅은 애쉬 블론드의 긴 머리가 눈 부셨다. 어딘가 차가운 듯, 신비로운 인상을 주는 금색과 푸른색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깊게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오빠 앞에서는 이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그만큼 편안하게 해주는 거겠지.

그래서 어쩌란 말일까.

알고 있었다. 그 놈이 무엇을 노리는지 정도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첫눈에 반한다.’ 혹은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런 부류의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아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하는 녀석들은 수도 없이 봤지만 그럴 때 마다 내 반응은 같았다.

비웃음.

다른 사람과 다르다니, 착각도 유분수지.

결국은 하찮은 사람이고 똑같은 여잔데.

그러나 지금이라면 그렇게 반응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저 사진으로, 그것도 조악한 휴대폰 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본 순간,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알아버린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사진 속에 있는 그녀가 어떠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감각은 몇 번인가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진심 어린 연애도 몇 번인가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고, 그저 단순한 진실을 몇 번에 걸쳐 깨달을 뿐이었다.

나로서는 안된다고.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랑할 줄 모르는 나로선 안된다고. 처참할 정도로 와닿는 그 감각. 더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띠링

동영상 첨부 메일.

재생을 해보자 오빠가 단순히 휴대폰을 보는 게 아니라 동영상이며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을 그녀가 깨닫고 당황하는 모습이 십 수초에 거쳐 재생되고 있었다. 도도하다 못해 어딘가의 귀족 영애라고 해도 믿을 법한 외모로 그와는 다르게 부끄럽다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 영상 속의 그녀는 정말로 편안한 마음으로 가족을 대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이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

술김에 얼떨결이라곤 해도 이런 속사정을 가진 사람에게, 게다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여동생을 자랑하는 짓은 보통은 하지 않는 것이 정상 아닌가.

, 됐다. 고민을 하더라도 답은 하나다. 내 인생에 더 이상 그런 일은.


 

그렇게 생각한 게 며칠 전이었다.

그 후로도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고 날아오던 메일이 어제부로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라도 생겼나 하고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런 걸로 먼저 연락하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연락을 한다면 그거야 말로 놈의 바람대로 움직이는 일이 되는 거라 그저 평정을 가장한 채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봐야 손님도 별로 없는 한적한 동네 카페라서, 하루 종일 건물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한 게 전부였지만.



  그런데 어째서 눈앞에 실물이 그것도 어떻게 해석해도 정상이 아닌 상태로 쓰러져있는 것일까. 청소의 신이 노여움이라도 품으신 걸까.

아니, 역시 이 비가 문제인 것 같다.

…….”

하아.”

차에서 내려 상태를 살펴보자 기절이라도 한 것 같았다. 대강 겉보기에 큰 상처는 없어 보이니 사고나 상해를 당한 건 아닌 거 같지만.

으응.”

그녀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는 건가? 아니, 잠꼬대인가.

가지 마. 가지 마오빠.”

그러곤 다시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든 것 같았다.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은 채.

…….”

나는 정말로 비가 싫다.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

안먹어.”

그래.”

이 집에 온 뒤로 몇 번째인지도 모를 식사 거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나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여기 두고 간다. 모처럼 만든 음식 버리는 짓은 하지 마라.”

아차, 실수였나. 굳이 말 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

잠시 반성해보았지만 내가 잘못한 건 없다. 저 녀석이 너무 경계가 심한 것이지.

늘 하던 대로 테이블 위에 음식이 담긴 쟁반을 올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내 방을 점령 당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도 서재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소파에 기대어 자야하나.

내가 사는 곳은 지은 지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었다.

1층은 카페로, 2층은 생활공간으로, 지붕이 있는 3층은 창고용으로 쓰고 있었다.

애초에 이것도 온전한 내 힘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한편으론 감사하고 있다. 내겐 이 집만이 전부였으니까.

카페를 연 것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어린 시절 어렴풋 기억나는 내 어머니에게선 언제나 은은한 커피 향이 났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책을 좋아하던 아버지.

그의 영향일까, 어린 시절 얼굴을 마주할 때 마다 그가 사주는 책이 좋았던 것일까. 이 집을 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서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 넓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이곳에 있으면 조금은 차분한 기분이 든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기도 편하고.


 

그 날, 비가 내리던 밤의 일이다.

고민을 했었지만 결국 차에 실어 집으로 데려왔다. 진흙으로 얼룩 진 옷을 입은 채로 잠들게 할 수 없다는 생각과 파렴치 한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얼마나 내 머릿속이 괴로웠는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겠다.

한바탕 난장판을 치르고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사소하지만 중요한 걱정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런 골목길 한복판에 쓰러져있던 것일까. 그 놈은 이 사실을 알까. 연락을 해줘야 하나. 우리 집을 찾으러 왔던 것일까. 눈 뜨자마자 유괴범으로 착각하고 난리를 치면 어떡하나- 등등.

그러나 그런 걱정들은 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걱정은.

배고파.”

이것이 이 집에서 처음 눈을 뜬 후 그녀가 한 대사였다.

깊은 색의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며 말했다. 그 눈은 처음 보는 타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경계심도 겁도 없이, 조금은 차갑지만 아는 사람을 대하는 눈빛.

어디서-라고 물어 볼 필요도 없이 그 자식이 여동생에게 내 사진을 보였다는 소리겠지. 어느 틈에 찍었는지는 짚이는 곳이 많아서 따질 수도 없을 것 같다.

. 크림 파스타.”

그 놈이 보낸 영상과는 차이가 있지만, 사진으로 봤을 때의 이미지와는 큰 차이가 없었기에 나도 덤덤하게 대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처음부터 두근거림이 없었으니까 덤덤하게 대할 수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뭐야, 밀가루는 못 먹나?”

아니.”

그럼 어서 먹어. 식으면 맛없다.”

안먹어.”

?”

…….”

배고프다며?”

배고파.”

밀가루 싫어하나?”

아니.”

그럼 먹어.”

안먹어.”

그래, 외모는 달라도 그놈의 동생이 맞구나. 지들 멋대로 사람 속을 뒤집는 이 자질은 유전자로부터 오는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열이 받으려고 할 때,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곳에 담긴 것은 조금 전 까진 보이지 않던 경계와 동요, 두려움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하아.”

그제서야 그녀의 허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을 바라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 뭐냐. 어쨌거나 만들어 놓은 음식이고 버리면 아까우니까. 생각 있으면 먹어라. 난 일하러 간다.”

불안함, 초조함. 그것들이 보였다. 내밀 듯 움찔거린 손의 반응을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오빠가 아니었다.

날 더러 뭘 어떻게 하라고.”

1층의 카페 홀로 내려와서야 짜증을 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벌써 일주일이라. 시간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게 소설 속의 이야기였다면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을 법 했지만 특기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음식을 가져다 놓은 지 한 시간이 지난 다음 올라가 보자 문 밖으로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이 놓여있었고, 그 후 암묵적으로 식사를 가져다 준 후엔 자리를 피해주는 일 정도가 전부랄까.

다 먹었어.”

깜짝이야.

인기척도 없이 어느 샌가 그녀는 내 뒤에 서있었다.

음식남기면 안되니까.”

그래.”

그리고다 먹은 뒤엔 인사해야하니까.”

그래.”

무슨 책?”

그녀는 내가 펼쳐놓은 책에 관심을 가진 듯 했다.

, 이건.”

사실 펼친 책을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책이라 수 십 번은 읽었기에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여섯 개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장렬한 전투와 안타까운 로맨스가 잘 버무려져있는 대서사시였다. 안타깝게도 절정을 달리는 부분에서 작가가 요절하는 바람에 영원히 끝을 알 수 없게 된 비운의 작품.

재밌어?”

재밌어. 너도 볼래? 처음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꼭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야.”

됐어.”

그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재에서 나간 그녀.

녀석은 마치 고양이 같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이젠 흥미를 잃었나 싶으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옆자리에 앉아주는.

이게 무슨 고생인지.”

차라리 강아지 같았다면 먹이로 길들이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무단으로 무료로 얹혀살면서 저 뻔뻔함은 어떤 근거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아니, 일단 먹긴 먹으니까 먹이로 길들여지고 있는 건가.


 

일주일 간 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외모는 시크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엄청나게 둔감하다는 것이었다.

주워온 첫날, 입고 있던 옷을 세탁한 건 좋았지만 우리 집엔 여자 옷이 없었다. 침대에 있을 땐 이불로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의복은 필요하니까. 그러나 새벽 3시를 넘긴 시간에 옷을 사러 갈 순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옷들을 주며 골라 입으라고 했다.

편한 옷이 좋을 테니 츄리닝 계열을 우선적으로 골라 줬지만 하나 같이 싫다고 했다. 펑퍼짐하고 취향이 이상하다면서.

결국 몇 벌인가 가져다주다가 지친 나머지 1층에 내려가 있을 테니 옷장에서 아무거나 꺼내 입으라고 했다. 그녀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몇 분 뒤 1층으로 내려왔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것은 새하얀 색의 살짝 커다란 원피스.

가 아니라 내 와이셔츠였다.

바지는?”

맞는 게 없어.”

그야 그렇겠지만.”

그리고 셔츠가 커서 아래까지 가려지니까 괜찮아.”

, , 그래.”

허벅지 안쪽의 뽀얀 속살이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말랐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매끄럽게 뻗은 하얀 다리를 보고 있자니 이건 무슨 고문인가. 하고 이 자리에 없는 신과 친구 놈을 저주하게 되었다.

3초간 유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으로 유혹하려는 사람의 표정이 저렇게까지 무감각할 순 없었다. 동물이나 곤충을 보는 듯한, 아니 아예 무기질을 보는 듯 텅 빈 눈초리를 보고 있자면 이 사악한 시험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시험이라니까 생각났는데, 우리 집에 온 지 사흘 째 되는 날에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일단은 여자애니까 어딘가 나가려면 화장도 해야 할 것이고 화장대도 필요할 것이라 여겨 둘째 날에 옷이랑 화장품 등을 사러 나갔었다.

물론 영수증은 잘 챙겨서 나중에 받을 생각으로 말이다.

생긴 대로 야무진 성격이라서 그런지 쇼핑은 제법 빠른 시간 내에 끝냈다. 가게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고르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기에 각오했던 것 보다 훨씬 일찍 쇼핑을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이때까진 내심 감탄하기도 했었다. 셔츠 건은 편하게 대한다는 의미로 생각하고 기본적으론 도도하고 야무진 성격이구나- 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식재료 등을 사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할 때였다.

먹을 거 사러 마트 가려는데 너도 같이 갈래? 이대로 집에만 있으면 갑갑할 거 같은데.”

갈래.”

알았어. 천천히 준비해. 기다릴 테니까.”

여자가 준비하는 걸 뒤에서 지켜볼 만큼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나가려던 찰나였다.

꼬옥.

그녀의 작은 손이 내 셔츠 끝자락을 부여잡는 기분이 들었다.

?”

…….”

기분 탓이 아니었다.

있으라고?”

끄덕.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정도로 작게 움직인 그녀의 얼굴.

알았어. 그럼 책이라도 가져 올게. 빤히 구경하는 건 싫잖아?”

끄덕.

딱히 읽고 싶었던 책이 없었기 때문에 늘 보던 여섯 별 이야기를 들고 와 소파에 앉았다. 어차피 수 십 번은 읽은 책이기 때문에 딱히 책에 집중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눈은 책에 둔 채 다른 감각은 그녀의 움직임 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

그렇기에 작은 소리가 들리자 무의식적으로 그녀 쪽에 시선이 간 것이었다.

작은 플라스틱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 화장품 통 하나가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작게 소리를 내곤 책상 밑에 떨어진 그것을 주우려 하였다.

상반신을 최대한 숙인 그 모습은 자연스레 뒤에 있던 내 관점에서 하반신만이 시야에 들어오는 자세가 되었다.

으응.”

성희롱으로 고소당하긴 싫어서 재빨리 시선을 피했지만 그녀는 뒤쪽에 사람이 있다는 건 의식도 못하는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장품에 온 신경이 가있는 것인지 더욱 안타까운 소릴 내며 그것을 주우려 하는 듯 했다.

. .”

한참이 지나도 만족스런 소리가 나오지 않고 안타까운 신음이 새어나오는 듯 하더니 곧 조용해졌다.

끝났나 싶어서 그녀 쪽을 돌아보자 이번엔 핫팬츠 아래로 드러난 아름다운 각선미를 숨기지 않은 채 이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품은 재주도 좋게 구석으로 들어간 것인지 그녀는 누운 자세로 몸을 뒤척이며 손을 뻗었고 전날 산 캐미솔 형태의 셔츠는 말려 올라가 늘씬한 허리가 드러났다.

…….”

대체,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문을 당해야하는 것일까.

이 녀석은 왜 이리 똑 부러지는 외모와 다르게 둔감해서 날 시험에 빠뜨리는 것일까.

그것은 천국과도 같으며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2-에 계속





덧글

  • 2012/09/09 21:1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unewolf 2012/09/09 21:29 #

    본격 러브 코메디 표방물. [?]
  • 미링미링 2012/09/10 00:08 # 답글

    재밌다^^
  • Lunewolf 2012/09/10 14:16 #

    감사릉 XD
  • 사요나 2012/09/10 03:57 # 답글

    잼있게 읽고 가요~
    다음편은 언제..
    원래 완결난거 아니면 읽지 않는다 주의인데..
    ㅠㅠ 어서 다음편을 ~~~~
  • Lunewolf 2012/09/10 14:17 #

    오늘...적어도 내일 정도엔 올릴듯 ㅋ_ㅋ
    재밌어해주셔서 좀 더 빨리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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